실생활 Tip

[실생활 Tip | 상식을 알아보자] 알아두면 좋은 상식들 Part 1-3 | 영원한 라이벌, 단추와 지퍼

AC 2021. 3. 17. 00:00

출처 : 구글

 

단추의 유래

 

대다수의 옷에는 단추가 있다.

하지만 옷을 여미는 기능을 하는 단추는 사실 '가리지날'이다.

 

※ 가리지날이란, 오리지날보다 더 오리지날이 되어버린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함.

 

 

 

단추는 원래 장식이었다.

 

역사상 수천년간 장식용이었던 단추 사실 브로치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그 흔적은 우리가 늘 입는 양복 정장 소매 단추에 남아있다.

 

사실 기능상으로 그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는 단추가 장식으로 달린 거다.

 

생각해보면 한복 등 동양 전통 복장엔 단추가 없다. 단추가 현재처럼 옷을 고정하는 용도로 쓰인 것은

13세기 유럽에서 시작된 것이다.

 

양복 정장에 달린 장식용 단추

수천 년간 옷을 고정하는 용도는 벨트나 매듭, 핀이 사용되었고 단추는 그저 장식이었다.

 

최초의 장식용 단추는 역사학자들의 추론에 따르면

기원전 6000년경 이집트에서 조개껍질이나 갑오징어 같은 연체동물 뼈를 말려서

옷에 꿰매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상아나 동물 뼈에 정교하게 조각하거나

금박이나 보석을 박아 장식했다고 하는데, 즉 브로치처럼 멋을 내는 용도로 사용한 것이다.

 

고대 그리스 A 여사 : "오호호~ 어때? 내 어깨 양쪽에 매단 진주조개 쌍둥이 세트~.

우리 남편이 로도스에서 직구한 조개 단추를 선물로 받았그리스~."

 

고대 그리스 B여사 : "어머~ 예쁜 조개네요. 근데 이를 어쩌나...

내허리 벨트엔 남편이 선물한 금박 입힌 산토리니 조개 단추가 있지헬라~."

 

뭐 대충 이런 느낌?

 

 

 

서양 단추의 역사

 

이후 BC 1세기경 두 개의 금속 고리를 연결하는 방식이 등장했는데,

마치 꽃봉오리 같다고 하여 라틴어로 보통 Bouton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영어로는 '버튼 Button'으로 약간 변형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프랑스 1세

 

헨리 8세

 

오랜 기간 단추는 장식용으로만 사용되다가 13세기경 유럽의 어떤 이름 없는 선구자의 발견 덕분에

옷에 단추 구멍을 내어 여미는 방식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단추가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당시 유럽인들은 단추의 새로운 사용법에 얼마나 열광했던지 옷에 촘촘히 단추구멍을 만들어 목부터 발목에 이르기까지 단추를 수백 개 단 사제복까지 등장했고 옷 입는 데 수십여 분이 걸렸다고 한다.

 

하지만 단추가 장식용으로 쓰이던 전통도 여전히 남아 있었기에 엄격한 신분제 사회이던 중세 유럽에선 평민이 장식용 단추를 다는 것을 금지하고 귀족만이 고유의 가문 문장을 새기거나 금은보석으로 치장한 단추를 옷에 매달아 신분을 드러냈다고 한다.

 

이런 단추 자랑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1520년 프랑스의 르네상스 군주, 프랑수아1세가 프랑스 칼레 평우너에 도착한 영국왕 헨리8세를 만나럭 ㅏㄹ 때,

 

검은 벨벳 옷에 1만 3600개의 금단추를 달아 프랑스의 부를 자랑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60여 년 전인 1453년까지 백년전쟁을 벌인 두 나라 임금이 왜 만났느냐면,

당시 프랑스가 지금의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지역을 장악한 신성로마제국과

이탈리아 북부 땅을 놓고 27년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로서는 속국이나 마찬가지인 밀라노공국마저 뺏기면 완전 고립되는 상횡이었던 것이다.

 

즉, 쉽게 말해 서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전 지역이 합스부르크 왕가에 떨어지게 되는 지경인지라, 60년 전까지 싸우던 두 나라가 본의 아니게 화해를 하고 공동 전선을 펼치기로 약속함에 따라 영국 왕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프랑스 편에 서서 이탈리아 북부 영토 전쟁에 참전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족보상 합스부르크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5세에게 프랑스 왕 프랑수아1세는

매형, 영국 왕 헨리 8세는 이모부였다는 거, 이거 완전 우리나라 아침 드라마 같이 출생의 비밀로 꼬인 상황...

 

그런 중요한 자리였고, 영국 왕이 친히 프랑스까지 온 상황이니

정황상 프랑수아1세가 정중히 모셔야 했는데 단추 자랑을 했으니 동맹은 결국 결렬되고...

 

 

영국의 협조를 못 구한 프랑스는 5년 뒤 발발한 파비아 전투에서 스페인 군에 패배해 프랑수아1세가

전쟁 포로가되어 마드리드 감옥에 끌려가고, 결국 프랑스는 이탈리아 북부 영토를 잃는 등 어려움을 겪게 된다.

 

곧이어 2년 뒤인 1526년 스페인 군은 프랑스와 손잡았던 교황을 붙잡기 위해 로마를 함락 시킨다.

8세기 이슬람 해군의 침략도 버텨냈던 가톨릭의 성지이자 교황의 직할지인 로마는 가장 신앙심이 깊다던 스페인 군에게 박살난 거다.

그 여파로 인해 사면초가에 몰린 프랑스가 토스카나공국, 오스만투르크제국과 연맹을 맺게 되면서 양식 코스요리와 커피가 프랑스에 전파되는데, 그 이야기는 추후 다시 포스팅 남기기로 하고...

 

반면 프랑수아의 금단추에 빡친 헨리8세의 딸, 엘리자베스1세는 대항해시대를 맞아 극빈국 영국을 해양대국으로 키워내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하는 등 전성기를 맞으며 한 쪽 장갑에만 48개의 금단추를 달고 위세를 뽐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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