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신을 찾게 되었는가
삶을 살아가다 보면 문득 이런 순간이 온다.
겉으로는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비어 있는 순간이다.
해야 할 일도 있고,
먹고사는 문제도 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갈증이 남는다.
무언가를 이루어도 완전히 채워지지 않고,
사람을 만나도 외로움이 남고,
앞날을 준비해도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 지점에서 신을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왜 이렇게 목이 마를까
사람은 늘 미래를 걱정한다.
앞날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계획하고, 예측하고, 준비한다.
그 자체는 나쁜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애써도 마음이 쉽게 쉬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으면 잃을까 두렵고,
관계를 맺으면 끊어질까 두렵고,
공부를 하면 방향이 맞는지 불안하고,
사랑을 하면 상처받을까 걱정하게 된다.
가정을 이루면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지고,
무언가를 책임질수록 두려움도 함께 커진다.
삶은 분명 기쁨도 주지만,
동시에 수많은 불안과 갈증을 함께 안겨주는 길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간은 원래부터
스스로를 완전히 채울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오히려 신을 찾고 싶어졌다.
내 힘만으로는 이 갈증을 다 설명할 수도 없고,
다 감당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신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는 일일까
어떤 사람은 신을 찾는 일을
현실을 피하는 것으로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신을 찾는다는 것은
현실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더 정직하게 바라보는 일이었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나는 흔들린다.
나는 미래를 알지 못한다.
나는 늘 옳지 않다.
이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람은 자꾸 자기 힘으로 다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알게 된다.
인간은 생각보다 약하고, 쉽게 흔들리며,
끝내 자기 자신만으로는 자기 영혼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신을 찾는다.
강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가 약하다는 사실을 더는 외면할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신을 찾은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만 믿고 끝내는 것으로 충분할까.
내가 평안을 얻으면 그것으로 끝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겪었던 혼란과 갈증,
내가 느꼈던 공허와 두려움을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겪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을 찾은 다음에는
그 신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리고 싶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어떻게 알릴 것인가.
예전에는 정답을 먼저 말하는 방식이
더 힘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정보가 적고, 비교할 대상이 적고,
사람들이 질문할 통로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지금 사람들은 듣고, 비교하고, 의심하고, 질문한다.
그리고 그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렇다면 전도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정답을 던지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신앙이란
정답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만으로는
이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정말 살리고 싶다면,
그 사람의 삶을 먼저 들어야 한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는 말보다 먼저
이런 질문이 필요하지 않을까.
너는 무엇이 힘드니.
너는 지금 무엇이 필요하니.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니.
사람마다 갈증의 모양은 다르다.
누군가는 외로움 때문에 무너지고,
누군가는 실패 때문에 자신을 잃고,
누군가는 관계 속에서 지쳐가고,
누군가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같은 문장만 반복해서 던지는 것으로
과연 마음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을까.
나는 전도가
말하기 이전에 듣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전해지는 말은
복음이 되기보다 부담이 되고,
진리가 되기보다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셨다
내가 이 문제를 생각할 때
계속 떠오르는 것은 예수님의 방식이다.
예수님은 멀리서 외치기만 하신 분이 아니었다.
사람들 한가운데로 들어가셨다.
병든 사람, 소외된 사람, 상처 입은 사람,
질문하는 사람들 곁으로 가셨다.
그리고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지금의 크리스천들도
그 방향을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같은 말만 크게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질문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마름이 어디에서 오는지 함께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신앙은 멀리서 판단하는 태도가 아니라,
가까이에서 함께 아파하는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 생각은 여기로 돌아온다.
배워야 한다.
사람을 배워야 한다.
시대를 배워야 한다.
고통을 배워야 한다.
성경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배우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성경을 더 깊이 읽고,
분별하려고 애쓰고,
내가 믿는 대상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묻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사람을 살리고 싶다고 말하려면
사람을 먼저 이해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곳으로 향한다.
그 사실을 외면한 채 겉으로만 비판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정죄하기 전에 배우고 싶다.
가르치기 전에 듣고 싶다.
전하기 전에 이해하고 싶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더 필요한 신앙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맺으며
나는 왜 교회를 다니는가.
나는 왜 신을 찾는가.
아마 그 시작은
내 안의 목마름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은
나만 채워지는 것으로 멈추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갈증을 보고도
아무 말 없이 지나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쉬운 정답만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도 않다.
나는 배우고 싶다.
사람을 알고 싶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
그래야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더 진실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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